신학원 성삼일 피정 (3/26/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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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원 성삼일 피정 (3/26/2016)

Postby markclc_admin » Mon Apr 25, 2016 9:13 pm

3강의: 부활

1. 예수님: 어떻게 부활을 하실 수 있었을까? 사랑의 힘.
1)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최후의 만찬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유다의 죄의 값이 얼마인지 떠나 그분이 유다라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드러내는 방식에 주목: “음식을 주고 나누는 것”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 예수는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아셨다. 그럼에도 그를 쫓아내기보다는, 상을 없기보다는, 다른 제자들로 하여금 그 사람을 막아내기보다는 사랑으로 품어주신다. 예수님을 결코 그를 공동체에서 쫒아낸 적은 없었다. 예수님이 누구인가를 자신을 버릴 사람에게 자신을 줌으로써 유다뿐만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가 누구인가를 드러냈다.
2) 어제 이야기한 것처럼 예수님이 죽음을 감내하신 것은 예수님의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사랑. 그 사랑을 결코 버릴 수 없었다. 편리함 때문에 가치를 버리지는 않으셨다. 그렇기에 부활로 자신이 하느님에 대한 지고한 사랑이 옳았음이 증명됨
2. 우리: 어떻게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사람들을 진정으로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이 부활의 체험이라고 믿기에.. 그 부활의 체험에는 어떻게 평화로운 마음, 따뜻한 마음, 예의로운 말씨, 삶의 기쁨, 회복탄력성있는 마음, 감사하는 능력, 오해, 시기, 미움에도 불구하고 유머감각을 지니는 것..
1. 부재중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경험하는가? 부당한 취급을 당하면서도 우리 자신을 변호하고 싶은 생각을 억누르고 참아넘긴 적이 있는지? 아무도 나를 지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하느님이 일하심을 믿는가? 예수님 약속 실현을 빈 무덤은 공허와 부재를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랑받았음을 기억하기 (8). 사랑하는 사람은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부활은 부재를 통한 현존체험. 부재의 막막함에서 오히려 충만함을. 빈 공간이 부활과 구원과 창조의 발판임을 잊지 않기: 루카 24: 1-9
2. 상징적 의미로 요한은 [사랑] vs. 베드로 12제자중 [권위]의 상징이라고 함. 사랑이 권위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권위를 살리는 것. 양보와 상대방을 살려내기: 요한 20: 1-10: 요한 21:1-8
3. 우리의 뿌리가 무엇이고 어디인가를 잊지 않기: 우리의 갈릴래아는 어디인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살펴보고 깊이 파고들 필요가 있다. 먼 곳에 갈릴래아가 아닐 것이다. 지금 이 자리가 바로 우리의 갈릴래아가 아닌가? : 마르코 16:1-8
4. 시각의 변화: 엠마오로 가는 길에 일어난 사건: 엠마오에서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루카 24: 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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